책 제목 - 로봇 박사 한재권이 말하는 로봇 정신
지은이 - 한재권
출판사 - 월간로봇
목차 - 저자 서문 / 추천의 글 / 첫걸음 - 로봇 공학자로 첫 걸음을 내딛다 / 두 걸음 - 로봇들의 월드컵, 로보컵에 도전하다 / 세 걸음 - 새로운 도전,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 네 걸음 - 내가 로봇을 꿈꾸는 이유 / 다섯 걸음 - 로봇 헤게모니 / 여섯 걸음 -미래의 로봇들 / 일곱 걸음 - 인문학에 로봇의 길을 묻다 / 부록1 - 좋은 로봇의 판단 기준 / 부록2 - 로봇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 로봇을 만드는 것이 평생의 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계기로 많은 분들과 함께 '로봇과 함께 살아갈 사회'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 저자 서문 중
작년에 한재권 박사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로봇'에 대해 평소에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저였지만 우연히 들은 박사님의 강의는 너무나 재밌고 유쾌했으며, 단순히 공대 박사가 들려주는 로봇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로봇과 함께 살아갈 사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강의였습니다. 강연을 들은 당시에 '뭐야, 그 어떤 인문학 강의보다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이잖아?' 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한재권 박사님은 버지니아 공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로봇 공학자로 첫 걸음을 내딛는 과정 및 버지니아 공대에서 진행한 로봇들의 월드컵 로보컵과 세계 최대 규모의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도전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 나갑니다. 뒷부분에는 현재 어떤 로봇들이 있으며 앞으로 어떤 로봇들이 나올지에 대한 내용과 로봇을 만드는 각 국가 간의 이해관계 및 로봇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에서 박사님은 뇌병변 장애를 가진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운동 기능과 언어 기능이 발달하지 못해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기와 같은 동생을 번쩍 들어 욕조로 옮겨 목욕을 시켜주거나, 동생이 울 때 필요한 것을 몸에서 꺼내 달래주는 로봇이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로봇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박사님은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잠시 접어둔 채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하여 안정되고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꿈을 잊은 채 살던 어느 날 문득,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여기서 더 늦으면 로봇을 만드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박사님은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였습니다. 미국으로 가기 전 돈을 벌기 위해 로봇 회사에 취직하였고, 그 과정에서 NSF 젊은 과학자상(2007) 및 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2009)에 선정되기도 한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현 UCLA 교수)와 인연이 닿아 데니스 홍 교수님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됩니다. 제가 대학생 때 학교에서 데니스 홍 교수님의 초청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호쾌한 분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의 저자인 한재권 박사님이 데니스 홍 교수님의 제자라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데니스 홍 교수님의 유쾌하고 즐거운 에너지를 한재권 박사님도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월드컵이 있다면 로봇에게는 로보컵(RoboCup)이 있습니다. 로보컵은 2050년에 로보컵에서 우승한 로봇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인간 축구팀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만든 대회입니다. 로봇의 축구 경기라고 하면 리모컨으로 사람이 조종하는 것을 상상하기 쉬운데, 로보컵은 인공 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스스로 공을 찾아서 드리블, 패스, 슛을 해 골을 넣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대회라고 합니다. 책에서는 걸음조차 떼지 못했던 로보컵 첫 출전에서부터 환호와 아쉬움이 가득했던 두 번째 로보컵 출전, 그해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뽑히고 우승의 영광을 누린 세 번째 출전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로보컵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팀 동료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모습, 라이벌과의 뜨거운 경쟁과 또 우정을 보면서 저도 같이 가슴 설레했고 다함께 힘을 합쳐 즐겁게 연구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매우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재권 박사님이 함께한 첫 로보컵 우승(2011) 이후 데니스 홍 교수님의 로멜라 로봇 연구실은 2012, 2013, 2014, 2015년 로보컵 우승을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책은 로보컵 대회 외에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 기관인 다르파(DARPA)가 개최한 '재난 구조 로봇 대회'에 대한 에피소드도 담고 있습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때 엔지니어 수십 명이 죽음을 무릅쓰고 원전으로 걸어 들어가 사태를 수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분들은 그 때문에 방사능에 피폭되어 각종 암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로봇 공학자들이 자괴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로봇을 개발하는 목적이 바로 로봇이 위험한 일을 대신하여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세계 최고의 로봇들이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2014년 세월호 침몰 때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로봇은 없었죠. 한재권 박사님은 어렸을 때 꿈꿔 오던 사람을 구하는 로봇,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난 구조 로봇 대회인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밸브 잠그기, 호스 연결하기, 벽 뚫기, 문 통과하기, 장애물 치우기, 자동차 운전하기'를 수행하고 있는 로봇 '똘망'에 관한 영상을 아래 링크에 첨부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EI6eu4olEs&feature=youtu.be
책의 후반부에 한재권 박사님은 로봇이 앞으로 새로운 권력이 될 것이며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중국의 가장 큰 무기인 노동력을 무력화 시키고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로봇에 투자하는 미국,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노인 복지용 실버 로봇 등을 연구하는 일본,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여 산업용 로봇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 유럽 등 주요 국가별로 로봇을 왜 개발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변화에 민감하고 빨리 적응하는, 새로운 첨단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앞서는 대한민국이야말로 로봇과 관련해 새롭게 탄생할 혁신적인 문화를 선도하는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 합니다.
책은 미래에 등장하게 될 무인 전차, 정찰 로봇, 근력 증강 로봇, 운송 로봇, 로봇 군인, 재난 구조 로봇, 의료 로봇, 무인 자동차, 운송 로봇, 서빙 로봇, 가사 로봇, 의료 보조 로봇, 공공 서비스 로봇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의 발달로 인해 인간 사회에 미칠 여러가지 부작용인 실업 문제, 군사 로봇의 양면성, 윤리 문제, 로봇이 어느 특정 소수 집단에게만 주어졌을 때 발생하게 될 권력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이야기 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로봇을 소유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책에서는 로봇의 등장으로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즉 로봇이 있기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 직접 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가정하고 있습니다. 책은 인간이 육체적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로봇이 대신해 준다면, 인간은 비로소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레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무언가로 옮겨가게 될 것이며, 이상적인 로봇 시대가 시작되면 인간의 감성이 좀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요. 자동차가 있지만 여전히 산책과 걷기가 중요시되고, 편리한 전자책이 있지만 종이책의 감성을 찾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당연한 시대이지만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손으로 직접 쓴 편지이듯 말입니다. 로봇과 인간성에 대해, 인간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로봇의 등장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성의 중요함을 다시 환기시키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새로 생겨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전과 후의 삶이 확연하게 다르죠. SNS라는 플랫폼이 생겨나고 소비의 트랜드와 사업의 트랜드가 전부 바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봇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면 우리 삶은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책에서는 일상생활에 로봇이 당연하게 자리 잡은 2035년의 하루를 상상하여 묘사해 놓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머지않아 정말 이러한 날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어쩌면 곧 경험하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어느 날에 대한 상상을 여기에 옮기며 이번 독서 리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2035년 서울, 재인의 하루
"주인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로봇-지니는 자고 있는 재인을 조심스레 흔들어 깨운다. "나 조금만 더 잘게. 10분만 더 잘 거니까. 10분 뒤에 다시 깨워 줘." "안 됩니다. 어제 주인님께서 잠드실 때 '오늘은 7시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깨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았어! 일어나면 될 거 아냐. 일어나면! 쟤는 융통성이 없어. 누가 프로그램 한 거야. 진짜!" 재인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침대 맡에 일어나 앉는다. 투덜대는 그녀를 향해 지니가 말을 잇는다. "주인님. 오늘 아침은 주인님이 좋아하는 블루베리 스콘입니다. 곁들인 소시지는 의사의 지시대로 저염 소시지로 준비했습니다. 커피는 어제 주문하신 원두로 만들었습니다." ... 미팅은 짧게 끝나 버렸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홀로그램으로 미팅을 진행할 걸 괜히 직접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고 우울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로봇-지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오늘 일은 잘되셨습니까? 제가 준비해 드린 샘플은 이상 없었습니까?" "응, 지니. 그건 괜찮았어. 근데 이번 건은 성사되지 않을 것 같아. 알고 봤더니 광고주가 아주 멍청이더라고. ... 오늘은 어째 기분이 꿀꿀하네" 로봇-지니는 조용히 조명을 낮추고 음악을 튼다. 사방의 벽에서 쇼팽의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온다. 거실 중앙의 홀로그램에서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영상이 춤을 춘다. 재인은 음악을 들으며 안락의자 깊숙이 몸을 맡긴다. 그러자 지니가 와인 병, 잔을 준비해 들고 온다. ... "미국 버지니아에서만 자라는 특수 포도를 원료로 한 칩을 써서 새로 3D 프린팅 한 로제 와인입니다. 벌꿀 칩이 다 떨어져서 복숭아 칩을 조금 가미했습니다." 재인은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인다. "음, 좋네. 근데 벌꿀이 다 떨어졌던가?" "소비량을 계산해서 이미 이틀 전에 주문했습니다만,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때문에 배달 드론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 -p95
저자인 한재권 박사님의 세바시 강연 링크를 마지막으로 첨부합니다.
tps://www.youtube.com/watch?v=0qFtcB-J2KM
개인적인 책 평가
★★★★☆
'소소한 도서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리뷰] 과학하는 여자들 (0) | 2020.10.01 |
---|---|
[도서리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0) | 2020.09.09 |
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 (0) | 2020.08.10 |
[도서리뷰] 더 위험한 과학책 (0) | 2020.07.29 |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0) | 2020.07.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