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지은이 :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
출판사 : 민음사
목차 : 서문 ― 범죄 영화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다/1부 왜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하는가 ― 가정 폭력/2부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순응한다 ― 비판 의식 결여/3부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 의식 ― 성범죄/4부 만만한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 ― 계층 문제/5부 결국 가장 중요한 의제 강간 연령 ― 미성년자 보호/작가 후기
평소에도 범죄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범죄영화와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범죄 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범죄 심리학 전문가인 이수정 교수님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전문성과 신뢰도가 올라갔습니다.
책 속에는 다양한 영화가 소개되어 있는 게 그중에는 제가 본 영화도 있었지만 보지 않은 영화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책은 기본적인 줄거리를 소개하고 있고, 스포일러에 해당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봤던 영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보지 않았던 영화에 대한 부분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의 첫 시작은 개봉한 지는 무척이나 오래되었지만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된 영화 '가스등'입니다.
영화 속의 꺼질 듯 말 듯한 가스등의 조도를 통해 여성의 취약한 정체감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합니다. (중략) 여성이 타자로서 경험하는 불안, 또 당시 여성의 지위가 남자들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의 은유와 양성 불평등에 대한 시사적 의미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p. 21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면서 영화 '가스등'에 대한 줄거리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피해가 발생하는지 또한 가스라이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스라이팅을 하려면 일단 친밀해야 합니다. 물론 그 존재가 꼭 남녀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반드시 배타적인 친밀 관계여야 합니다. 제삼자가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요. p. 26
그다음은 '적과의 동침', '돌로레스 클레이번'이라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가정폭력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가장 놀랐던 점은 친족에 대한 범죄 통계는 산출이 되지만 그것을 세분화하여 부부간에 얼마나 폭력이 일어났는지는 현재의 통계로는 산출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부부간의 폭력, 부모와 자식 간의 폭력이 뭉뚱그려 친족 간의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 폭력 피해자들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해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봐도 때린 사람이 집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중략) 가해자를 퇴거시키면 되는데 왜 예산 이야기가 나옵니까. 가해자는 도울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시스템 자체를 피해자 보호 위주로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p. 42
생각해 보면 가해자를 집에서 퇴거시키고 피해자가 본인의 집에 머문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도망쳐 쉼터로 향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은 가정 폭력이라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정폭력은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고들 말합니다.
매 맞던 아내가 죽으면 가해자에게 상해 치사가 내려지고, 죽을 만큼 매를 맞던 아내가 이삼십 년 후 폭행 가해자인 남편을 죽이면 그때는 살인죄가 적용됩니다. p. 57
정당방위에 대한 법률이 좀 더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부의 시작은 영화 '사바하'입니다. 이 영화 제목을 보자마자 '사이비'에 대한 내용을 다루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아동 학대'에 대한 내용도 다루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속에서는 수많은 아동학대가 등장합니다.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나서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방치된 '그것', 그리고 교주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을 죽인 사람은 소년원에서 세뇌당한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학대는 일종의 해체의 결과입니다. 아이를 품어 줄 친사회적 조직이 해체된 상황에서는 아이가 친사회적 가치관이나 규범을 내면화하기 어렵고, 그러다 보면 결국 생존만이 주요한 목표가 됩니다.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범죄일 확률이 높습니다. p. 103
아동을 돌보는 것에 대한 책임은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 또는 사회의 제도를 통해 소외받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범죄율이 낮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아동 청소년은 아직은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제도나 예산에 대해 성인이 나서서 대신 권리 주장을 하지 않으면 사실 제대로 보장받기가 어렵습니다. p. 106
3부는 성범죄와 관련된 영화들을 다루었습니다. 영화 '미저리'는 스토킹 범죄와 영화 '걸캅스'는 마약 및 불법 동영상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5부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연달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그루밍 성폭력을 다루었고, 영화 '꿈의 제인'에서는 청소년 가출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최근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 대한 기사나 뉴스를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스토킹을 법적으로 제재하기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따라다니거나 끈질기게 연락을 하는 것만으로는 처벌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피해자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어야 간신히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피해자는 더 이상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스토킹으로 인한 범죄와 피해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가해자를 처벌할 법률이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마음 아팠습니다.
옛날로 보면 구애 행위로 볼 만한 행동을 스토킹이라면서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이 타당하냐, 억울한 사법 피해자를 더 많이 양산하는 것 아니냐, 이런 종류의 논쟁이 오가다가 결국은 법사위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끝나는 식입니다. (중략) 이처럼 명백한 피해가 실재하는데 구애 행위냐, 아니냐를 토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p. 171
스토킹 방지법은 선량한 젊은 정년들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한 법률이 아닙니다. 그리고 스토킹 피해자들이 꼭 여성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p. 174
영화 '걸캅스'는 마치 버닝썬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마약, 불법 동영상, 성 착취 등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몰카'라는 단어 대신 '불법 동영상'이라는 단어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몰카나,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성착취 동영상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대한 이수정 교수님의 설명이 인상깊었습니다.
불법 동영상들을 성매매와 연관된 영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성매매는 성폭력과는 양상이 다르잖아요. 그렇다 보니 불법 동영상을 상업적 목적의 음란물과 구분하지 못하고, 동영상 속 인물이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p. 184
성을 인격으로부터 분리된 일종의 상품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이성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일종의 병리적 요소들이 온라인에 모여 범죄적 환경이 형성된 것입니다. 온라인의 익명성 뒤에서 일탈된 성적 욕망들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p. 189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사라지고 성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성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서 찾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은 재판에서도 '피해자다움'을 따지잖아요. 범죄 피해를 당하면 그 피해로 고통받으면서 피해자다워야 하는데, 당당하다든가 울지 않는다든가 하면 피해자답지 않은 걸 보니 너의 책임도 일부 있는 것 아니냐, 가해자만 몰아붙이지 마라, 이런 논리로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p. 192
피해자에게도 일상을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강간을 당한다고 해서 인생이 종결되는 것도 아니고, 사법적 정의도 금방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대응은 사실 피해자의 생존 본능이고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반응을 보면 우리 사회에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게 됩니다. p. 346
미성년자들이 가출팸에 들어가게 되면서 어떻게 범죄에 빠져들게 되고 그곳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더불어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항상 목소리를 내는 이수정 교수님의 말씀이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이미 성폭력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려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고 지레 생각해 버립니다. (중략) 피해자의 회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단순히 당자사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특히 전문가들의 도움과 심리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세금을 쓰듯이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도 세금을 써야 합니다. p. 383
제 개인적인 평점은 4점입니다.
'소소한 도서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리뷰] 궤도의 과학 허세 (4) | 2024.01.04 |
---|---|
[도서후기] 운동의 뇌과학 (2) | 2023.12.20 |
[도서리뷰] 아파트 속 과학 - 과학의 시선으로 주거공간을 해부하다 (1) | 2023.11.23 |
[도서후기]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았다 (5) | 2023.11.08 |
[도서리뷰]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2) | 2023.10.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