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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서리뷰

[도서리뷰] 지구를 구할 여자들

by yeonnni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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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카트리네 마르살

옮긴이 : 김하현

출판사 : 부키

목차 : 발명(1장 가방에 바퀴를 다는 데 왜 5000년이 걸렸을까/2장 일론 머스크보다 100년 앞선 전기차의 발명)

          기술(3장 브래지어와 거들이 인류를 달로 데려간 이야기/4장 그 많던 여성 프로그래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여성성(5장 고래 사냥과 페이스북의 공통점, 6장 인플루언서는 어떻게 해커보다 부유해졌나)

          신체(7장 인간을 닮은 기계, 기계를 닮은 인간/8장 체스는 이겨도 청소는 못하는 AI)

          미래(9장 엥겔스는 왜 메리의 안부를 묻는 것을 잊었나/10장 미래를 구하러 온 발명의 어머니)

          해제 여성의 눈으로 기술과 발명의 역사를 본다는 것은/감사의 말/주/참고문헌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책소개

정희진 · 임소연 · 하미나 추천. “설득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매력적인 책이다!” 여행 가방에 바퀴를 다는 데 왜 5000년이나 걸렸을까? 전기차가 이미 100년 전에 유행했다고? AI는 왜 체스는 이기면서 청소는 못할까? 나사는 어쩌다 우주복을 여성용 속옷 재단사에게 맡기게 되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관련되어 있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통해 주류 경제학이 지워 버린 여성의 자리에 주목했던 카트리네 마르살은 신간을 통해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인류의 발목을 붙잡아 온 편견과 차별을 파헤치며 남성 중심의 과학기술사를 통쾌하게 뒤집는다. 남자는 무거운 짐을 직접 드는 것이 당연하고, 여자는 짐을 들어 줄 남자 없이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바퀴 달린 가방의 발명을 방해했다는 이야기, 전기차가 여성용 차라는 인식 때문에 휘발유차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사라졌다는 사실은 지금 들으면 실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편견에서 자유로울까?

이 책은 과거의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닥칠 혹은 이미 닥쳐 온 미래를 예측하며 대담한 제안을 던진다.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기후 위기에 지구가 불타는 미래가 당연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해답을 찾으려면 여성과 기술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근본부터 다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껏 배제된 존재들과 지워진 아이디어들, 그래서 새로운 것들, 거기에서부터 미래를 구할 혁신과 창의성이 나올 것이다.

 

 

 

저는 과학사를 다룬 책을 좋아합니다. 터무니없는 것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던 시대를 지나 현재의 과학을 이루기 위해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었는지 알게 되는 것은 한 편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은 과학기술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왜' 이런 방향으로 발전이 이루어졌는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 과학기술사에 그리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5가지의 주제(발명, 기술, 여성성, 신체, 미래)를 통해 지금까지 세상이 어떻게 여자들의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과학이 발전되어 왔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여성들의 생각과 기술이기 때문에 배제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과 분위기가 어떻게 여성들을 소외시켰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행 가방과 전기차라는 익숙한 주제의 새로운 내용을 다룬 1장과 2장이 가장 기억이 남았습니다.

 

최근 코로나19 방역규제의 완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해외여행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보복여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항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이들은 캐리어를 '끌고' 다닙니다. 바퀴가 달리지 않은 여행가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금 시대에 생각해 보면 여행 가방이 발명된 지 불과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새삼스럽습니다.

 

U.S. Luggage debuted its wheeled suitcase in 1970. (출처; CNN)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바퀴는 5000년 전에 발명되었는데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버나드 새도우가 여행 가방을 선보인 1972년이 넘어서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새도우보다 약 40여 년 앞서서 존 앨런 메이가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판매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개발자 본인조차 자신이 개발한 것의 영향력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한다. (중략) 이런 능력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대개 발명은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한다. p. 20
혁신은 종종 이런 상황에 처한다. 신기술이 정말 위대할지는 몰라도, 늘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1972년이 되어서야 여행 가방에 바퀴가 달린 이유를 이처럼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p. 24-25

 

 하지만 1961년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라는 최초로 우주에 나간 인간이 나타날 때까지 여행 가방이 달린 바퀴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이 유행한 것은 사회가 바뀌고 난 후입니다.

 

'진정한 남자는 가방을 굴리지 않고 들고 다닌다', '여성의 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남자답지 못하다', '여성은 짐을 들어주는 남성 없이 여행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나서야 여행 가방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그 가방이 남성성에 관한 지배적 견해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p. 34
요컨대 여행 가방은 우리가 젠더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남자가 짐을 들어야 하고 여자의 기동성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을 때 바닥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p. 38

 

 

 

저는 또한 전기차가 최근에 개발된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전기차가 개발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휘발유차는 점화장치와 크랭크를 이용하여 외부에서 힘들고 위험하게 시동을 거는 반면 전기차는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 수 있었고 조용하고 관리도 쉬웠습니다. 어째서 시간이 흐를수록 전기차에 비해서 휘발유 차의 비율이 올라갔을까요? 어떻게 시끄럽고 지저분한 휘발유차가 편안하고 조용한 전기차를 이겼을까요?

 

전기차의 안정성과 쾌적함은 '여성스러움'과 연결되었습니다. 더불어 전기차는 도시 주행에 이상적인 차였지만 배터리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략 60킬로미터마다 배터리를 충전해야 했고, 대도시 바깥의 열악한 도로는 잘 달리지 못했습니다.

 

Electric Vehicle charging station in 1912. (출처; 게티이미지, Hall of Electrical History Foundation )

 

휘발유 차는 모험가를 위한 차였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험은 여성이 아닌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전기차는 더 '여성스럽다'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p. 49
갈수록 전기차는 여성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중략) 전기차의 '여성적인' 연관성 때문이 아니라, 전기차가 목표한 시장이 그것을 확고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p. 53

 

In the early 20th century advertisers were busy targeting prospective electric car buyers. (출처; 게티이미지, Stock Montage)

 

하지만 남성들이 진정으로 그러한 '남성다움'을 원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에 맞추어 살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 또한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차를 선택받도록 강요당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 편안함은 그토록 오랫동안 최첨단의 기술 혁신이 아닌 여성적 장식으로 여겨졌을까? 왜 편안함과 수월함, 아름다움, 안전은 여성만 요구할 수 있는 특성이었을까? p. 62
결국 승리한 것은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휘발유 차의 성능이었다. 전기차는 안전성과 조용함, 편암함을 상징했다. 이 가치들에 본질적으로 여성스러운 점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이것들은 인간적인 가치들이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가 여성적이라 불러온 것들은 인간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p. 69

 

 

 

3장과 4장의 공통적인 주제는 '여성의 세계에 속하는 것은 기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입니다.

 

1000년 된 바늘과 실 기술이 없었다면 우리는 달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술은 보통 남성보다는 여성과 결부된다. (중략) 그럼에도 우리는 부드러운 것을 어딘가 덜 전문적인 것으로 여기곤 한다. p. 85-86
전생은 그 본질상 혁신을 통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보다 파괴하는 경제적 가치가 훨씬 크다. (중량) 그렇다면 왜 우리는 폭력과 죽음이 있어야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p. 88
우리는 창과 뒤지개 중 무엇이 먼저 발명되었는지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서사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곤봉과 창이 인간의 첫 번째 도구라고 추정하는 것일까? 이렇게 추정하면 인간 발명의 추동력이 주변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믿게 된다. p. 91-92

 

저자의 의문은 정말로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역사를 배울 때 우리는 다른 무리를 정복하기 위한 무기를 개발하고, 이러한 파괴적인 과정 중 생겨난 새로운 기술들을 통해 세상이 발전되어 왔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문헌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선사시대의 유물 중 창과 뒤지개 중 어떤 것이 먼저 발명되었는지 혹은 동시에 발명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부여한 서사를 통해 유추할 뿐입니다. 왜 우리는 인류의 발전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걸까?

 

산업혁명의 기계와 철이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부드러운 옷감 또한 인류의 의복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시대를 구분 짓습니다. 단단한 느낌의 재료들은 기술적인 것으로 인정되지만 부드러운 느낌의 재료들은 덜 기술적인 것으로 구분된다는 관점 역시 매우 새로웠습니다.

 

여성의 세계에 속하는 것은 당연히 기술이 될 수 없다. 역사 내내 우리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 구분을 유지해 왔다. (중략) 그 결과 어떤 재료는 기술적인 것으로 어떤 재료는 그만큼 기술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p. 95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년(girl-year)과 여성시간(girl hour)이라는 단어이자 측정단위를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여성년이란 자동차의 힘을 말 한 마리가 끌 수 있는 힘으로 표현한 마력(horwepower)처럼 처음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여성들의 계산 기능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였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프로그래밍은 지시를 따를 능력만 있으면 되는 작업으로 여겨졌다. 그건 여성이 잘하는 일이라고, 사회는 생각했다. 여성은 고분고분했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꼼꼼히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여성의 본성이었다. p. 120

 

여성들의 특성 및 본성과 어울리는 직업으로 여겨졌던 프로그래밍사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나가기 시작하자 남성들이 컴퓨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되었다. 프로그래밍은 여성 중심 분야에서 남성 중심 분야로 바뀌었고, 그와 동시에 지위가 낮은 분야에서 지위가 높은 분야로, 저임금 분야에서 고임금 분야로 변했습니다.

 

 

 

5장과 6장은 여성성이라는 주제로 엮여있으며, 5장은 사업, 6장은 소비에 관해 서술하였습니다.

 

여성 장애인 아이나 비팔크가 발명한 보행기는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통장잔고는 그 영향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여성의 사업은 남성의 사업에 비해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저자는 이로 인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배제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이 벤처 캐피탈 투자가 압도적으로 남성에게 흘러갈 때, 우리는 젊은 여성이 직접 개발한 앱에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아이나 비팔크가 자신의 보행기로 부자가 되지 못한 것, 또는 여성들이 수익을 내고 있는데도 대출을 받지 못해 네일 숍을 확장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p. 160

 

저자는 서술이 좋았던 것은 남성과 여성의 입장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지 않고 젠더의 문제라고 설명하고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부분입니다.

 

가부장제의 비극은 인간의 경험을 둘로 쪼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 삶의 어떤 측면은 여성적이고 어떤 측면은 남성적이라고, 남성적인 것이 여성적인 것을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서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에서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칭하는 가치들이 밀려나게 되었다. p. 162

 

6장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깨달음을 얻었던 것은 소비와 직업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집에 필요한 물품이 떨어지지 않게 구비하고 소비하는 것은 주로 여성들의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생각해 보면 물품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써야 하고, 같은 제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집안일 중 하나입니다. 여성과 쇼핑은 너무나 익숙한 조합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나 쇼핑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쇼핑은 가정이 굴러가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일 중 하나다. (중략) 오늘날 여성이 남성보다 이런 것들을 더 많이 신경 써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이것은 여성의 삶에 따라오는 정신적 감정적 노동의 일부다. (중략) 그러나 사회의 최고 소비자로서 여성이 수행하는 역할은 여성에게 그 어떤 특별한 메달도 안겨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민간 소비는 종종 더럽거나 하찮은 것으로 표현된다. p. 175-176

 

여성이나 남성 모두에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무척이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육아와 집안일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해나가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최근에서야 알려진 데에는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에 관한 정체성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자의 설명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역사상 여성은 부모로서의 정체성과 직업적 정체성이 본래 대립한다고 여겨졌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직업을 갖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좋은 아버지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으며, 2010년대의 수많은 여성에게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이용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이 간극을 메우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p. 188

 

 

 

7장과 8장은 신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신체라는 제목을 보고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에 관한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7장은 신체와 돌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8장은 인간과 기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을 기계처럼 취급하는 현재와 기계를 인간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서술도 흥미로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의 위기가 신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저자의 표현이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위기는 정확히 반대였다. 이것은 인간 신체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 (중략) 이 사건은 경제가 인간의 몸에 기초한다는 매우 기본적인 사실을 똑똑히 상기시켰다. p. 218
그러나 이러한 긱 이코노미Gig economy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을 부르는 데 사용된 기술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이들은 노동자라고 불리지도 않았고, 여러 '임무'를 완수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p. 220
결국 이들의 업무는 돌봄이 아니라 기술이 안내하는 개별 업무의 집합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변화로 돌봄 노동자들이 지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우리는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시스템은 우리를 그렇게 바라본다. p. 222
팬데믹에 뒤따른 경제 위기 역시 '블랙 스완'이 아니었다. 이 경제 위기는 인간 신체에 의존하는 경제의 본질이 일으킨 연쇄 반응이었다. p. 224

 

더불어 저자는 일하는 몸, 돌봄이 필요한 몸, 다른 몸을 낳는 몸, 태어나고 나이 들고 죽는 몸. (p. 228)이라는 표현을 통해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신체를 구분하지 않고 건강한 신체부터 노화나 장애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신체까지 표현한 것이 무척 새로웠습니다.

 

몸을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은 곧 인간의 필요를 가장 중시하는 경제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굶주림과 추위, 질병 또는 의료 서비스와 보육 서비스의 부재 같은 신체적 문제들이 갑자기 가장 중요한 경제적 문제가 된다. (중략) 인간의 몸은 우리가 취약하며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그동안 '여성적'이라고 학습한 바로 그 특징들이다. 결국엔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가 해 온 짓이다. 우리를 겁먹게 하는 인간 경험에 여성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무시하는 것. 지금껏 살펴봤듯이 이는 우리가 자신을 망각했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수용하지 않는 경제를 만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 227-228

 

기계가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 기계의 바탕에 남성성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체스는 두지만 청소는 못하는 로봇. 사고 능력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신체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과연 이것이 남성성과 여성성에 의한 것인가 하는 의문점은 있었다.

 

기계에게 고등 수학과 체스를 가르치기는 무척 쉽지만 운동 기능을 가르치기는 훨씬 어렵다. p. 242
식당 종업원이 사용하는 기술은 첫눈에는 간단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 수십억 년을 거친 발전의 결과물이며, 이런 발전을 통해 인간은 지구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익히고 다듬었다. p. 247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몸은 언젠가 죽는다. 그뿐만 아닐까, 우리 몸은 언젠가 병들고 노화해 남성이 타인과 주변 환경에 의존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남성은 이 사실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존성은 남성의 젠더 역할에 들어맞지 않는다. (중략) 여성은 출산과 젖이 흐르는 가슴, 포궁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통해 자기 몸의 현실과 더 긴밀하게 묶여 있다고 여겨졌다. p. 258

 

 

 

9장과 10장은 미래에 관한 내용이었다.

 

9장은 과연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미래에 발생할 경제 문제는 어쩌면 여자아이들이 코딩을 배우라고 격려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남자아이들이 타인을 돌보라고 격려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p. 288
우리는 로봇 같은 업무에서 해방될 것이고, 그 대신 타인과의 교류에서 전문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전문 지식과 결합한 인간성은 노동 시장에서 갈수록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고, 더 많은 직업에서 '소프트' 스킬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p. 294
최초의 기계 시대가 결국 등골이 휘는 육체노동에서 수많은 사람을 자유롭게 했듯이, 제2의 기계 시대도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우리가 창조성과 인간관계를 북돋는 데 더욱 전념하게 할 수 있다. p. 299-300

 

 

10장은 1, 2장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이었습니다. 지구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여자를 '마녀' 아니면 '어머니'로 인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인류를 공격한 책임은 대부분 마녀가 짊어졌다. (중략) 삶은 고달픈 것이었고 사람들은 어머니 자연이 부리는 변덕의 제물이 된 듯한 초라한 기분을 느꼈다. p. 307
유럽의 소빙하기에 폭풍과 흉작의 원인이 마녀에게 있다는 논리는 무척 타당한 것이었는데, 우리의 여성성 개념과 자연 개념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씨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릴 수 있는 이유는 남성보다 여성이 자연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는 데 있다. p. 313

 

인류는 과거 날씨에 대한 책임을 '마녀'에게 물어놓고, 현재 자연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자연 Mother Nature'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어감은 참 좋다. 그러나 가부장 사회에서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중략) 본질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우리가 어떻게 굴든 상관없이 우리를 돌봐 주고 사랑해 주는 여성이다. 현재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를 빗대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어머니상이다. p. 320
우리는 지구를 소유하고, 지구를 보며 감탄하고, 지구에게 돌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지구를 깊이 이해하고 싶진 않다. 지구의 복잡함을 받아들이고 싶진 않다. 이상적으로는 그저 지구를 지배하고 지구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만큼만 지구를 알고 싶어 한다. p. 321

 

여성들의 아이디어가 젠더 관념에 의해 발전하지 못하거나, 여성들의 사업이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여성들에게 속한 재료와 기술이 전문적인 것으로 인식되지 못하거나, 청소와 돌봄 같은 것 신체적인 문제를 간과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우리는 더 많은 아이디어를 발견 및 발명해야 하고, 더욱 다양한 경험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이 사실은 혁신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기술 문제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배제했고 누구의 아이디어가 발명이나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를 고려하면 우리는 더욱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중략) 현재 우리는 그동안 본인의 경험이 인간의 경험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집단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역사적 순간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인다면 여러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p. 331-332

 

 

우리에겐 마녀가 필요해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금융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단순히 경제학적 관점으로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점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경제 용어(소비자 권력, 프로슈머, 블랙스완 등)에 관해서 많이 알게 되었으며 다양한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주제를 풀어가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이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개인적인 평점은 4.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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