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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과학이야기

근친교배가 유발하는 유전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by yeonnni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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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우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지난 3월 27일(현지 시각) 텔레그래프와 더타임스 보도 등에 따르면,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동의 인권을 위해 설립된 네덜란드 재단 '도너카인드(Donorkind)'는 41세 남성 조나단 제이콥 메이어는를 상대로 정자 기증을 즉시 중단하고 저장된 정자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도너카인드 재단은 메이어가 지금까지 최소 13곳의 불임클리닉에 정자를 기증해 최소 550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정자 기증을 받아 태어난 출생자가 받게 될 심리적 충격을 줄이고 근친 출산을 예방하기 위해 기증자 1명당 25명 이하로 출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지침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메이어의 정자 기증을 막기 위해 재단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기사를 읽으면서 정자 기증을 통해 전 세계에 5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고, 더불어 이와 같은 무분별한 정자 기증을 제제할 법적인 조치가 미흡하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유튜브)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근친교배와 그에 따른 유전병에 관해 흥미를 느끼게 되어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3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한 이후 15-20세기 초까지 600여 년 간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영토를 다스리는 황제로 군림한 가문이며 유럽의 정세에 가장 영향력 있던 명문가 중 하나입니다. 합스부르크 가에서 배출된 왕이나 왕비들은 '합스부르크(Hapsburg jaw)'으로 알려진 주걱턱과 위아래 턱뼈가 앞으로 툭 튀어나온 돌악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이한 인상은 거듭된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질환 때문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중 스페인 왕조는 약 200여 년 간 11차례의 결혼 가운데 9쌍이 사촌 이내의 근친혼이었습니다.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자는 명목으로 진행된 근친혼인에 의해 유전병이라는 치명적인 결과가 생겨났습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카를로스 2세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의 누적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고, 왜소한 몸에 비해 머리가 기형일정도로 컸으며, 매우 심한 주걱턱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어서 소화장애를 앓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갈아먹었다고 합니다. 각종 내장 질환을 앓고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던 카를로스 2세가 자식을 얻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막을 내렸습니다.

 

카를로스 2세 (출처; google image)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리 앙투와네트도 합스부르크의 사람입니다. 그녀는 당시 사람들이 아름답지만 튀어나온 턱이 아쉽다고 할 정도로 하관이 많이 돌출됐습니다. 덕분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자들은 턱을 가리기 위해 항상 부채를 가지고 다녔고,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머리 장식을 사치스럽게 꾸미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출처; 뉴스1TV 유튜브)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을 가지고 있는 가족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오드에 사는 휘태커 가족이 심각한 유전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연이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마크 라이타 감독은 2004년 휘태커 가족의 사진을 촬영한 뒤, 2020년 이들 가족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이 가족의 복잡한 근친혼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휘태커 가족 (출처; Soft White Underbelly)

 

석탄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 존 휘태커와 주부인 어머니 그레이시, 이들의 자녀인 삼 형제 로렌, 티미, 레이가 이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휘태커 가족 삼 형제의 부모, 조부모 모두 사촌지간이었습니다. 부부인 존과 그레이시는 사촌이자 조부모를 공유한 사이였고, 어머니 그레이시는 부친과 모인치 사촌 지간에 근친혼을 해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존과 그레이시는 1935년 결혼해 15명의 자녀를 낳았고, 이 중 2명이 세상을 떠났고, 다수가 장애를 가졌습니다.

 

휘태커 가족은 구성원 대다수가 자폐를 앓아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유전병 증세가 근친혼을 거듭해 온 자녀 세대에서 더욱 심해지다 보니 자식들은 언어로 소통이 불가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후, 휘태커 가족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관해 마크 라이타는 "휘태커 가족이 직면한 빈곤의 정도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런 일이 실존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근친교배에 의한 유전병은 개를 통해 가장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특성을 가진 개를 만들기 위해 또는 자신들이 마음에 든 외모를 가진 개를 만들기 위해 선택적으로 교배를 하였습니다. 인간의 욕구와 취향이 따라 육종 된 견종은 다양하게 분화됐습니다.

 

선택교배를 통해 태어난 개가 번식업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버려졌고, 그들의 마음에 든 개는 살아남아 소위 '순종견'이 됐습니다. 우리가 아는 견종의 90%는 지난 100여 년 사이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더 좋은 개를 만들려는 노력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개들이 유전적으로 취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특유의 품종을 만들기 위한 초기에는 근친교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근친교배는 자손의 유전적 다양성을 떨어뜨려 여러 가지 유전성 질환을 유발하게 됩니다. 개채수가 많아지면서 형제자매, 부모자식 간의 교배는 없어졌겠지만, 이미 그들은 모두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였고, 이는 사라지지 않고 후손들에게 전파됐습니다. 품종에 따라 독특한 외형과 해부학적 특징에서 유발되는 질병이 많으므로 이러한 개들을 키울 때는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19세기말에 육종 된 저먼 셰퍼드는 당시 군견으로 맹활약했고, 현재까지 군견, 경찰견, 탐지견, 구조견 등으로 널리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유전적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퇴부와 팔꿈치 관절의 형성 장애가 흔히 발생하며 퇴행성 척수증, 심근병증, 백내장의 발생률이 높은 편입니다.

 

 

German shepherd (출처; google image)

 

영국을 대표하는 불도그는 머리가 크고 안면부의 폭이 넓어 새끼는 자연분만이 어려워 대부분 제왕절개술에 의존합니다. 주둥이가 짧고 코가 위로 벌어져 있어 코를 심하게 골고, 호흡기에 문제가 많습니다. 주름진 피부는 피부병의 온상이 됩니다.

 

닥스훈트나 웰시코기와 같이 상대적으로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품종은 허리디스크의 발생빈도가 높습니다.

 

Welsh corgi (출처; google image)

 

시츄나 페키니즈 퍼그 등 눈이 크며 튀어나오고 얼굴이 납작한 품종은 안구가 취약하여 각막염이나 안구건조증에 쉽게 노출될 수 있으며 호흡기 질병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견종들이 각자 발병률이 높은 서로 다른 유전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순종과 잡종을 차별하지 않고, 순종에 대한 집착을 없앤다면 개를 키우는 반려인도,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개도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친교배에 따른 유전병은 멸종위기종에게 특히 많은 위험을 안겨줍니다.

 

환경오염과 인간에 의한 서식지의 축소로 인해 멸종위기 종의 근친교배가 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에 있는 아무르 호랑이(일명, 백두산 호랑이)의 개체 수가 늘었지만, 근친 교배의 위험이 있다는 중국 전문가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중국의 연구팀은 20세기말 야생 백두산 호랑이가 10여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최근 5년간 20마리 이상의 새끼 호랑이가 관측됐다고 밝혔습니다. 호랑이 서식지에서 수집한 150개의 유전자 샘플을 바탕으로 근친교배에 의한 번식 여부를 분석한 결과 이미 보통 수준의 근친교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북극해 빙하 손실로 북극곰 근친교배 사례 또한 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북극연구소 연구진은 1995-2015년 사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 북극곰 개체군 유전적 다양성이 최대 10%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2021년 학술지에 게재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 다양성의 감소는 이미 서식지 축소 등으로 생존 기로에 놓인 북극곰 멸종 위험을 더욱 증가시킵니다.

 

 

인간에서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근친교배에 따른 다양한 유전병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특히나 개와 멸종위기 동물에서 나타나는 근친교배의 사례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간의 취향에 따라 육종 되면서 유전병을 가지게 된 개와 인간에 의해 사냥되고 서식지가 파괴되어 개체수가 줄어 근친교배 빈도가 높아진 멸종위기 종의 기사를 읽으면서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개의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고, 멸종위기 종들이 근친교배에 의한 유전병이 발병되지 않도록 새로운 관점을 가진 보호법이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03/29/FBYWJG4DGNHJJJCXILUWRKHCPA/

 

550명이 같은 아빠 뒀다… 네덜란드 정자기증왕, 결국 소송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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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chosun.com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84%B8%EA%B3%84-%EC%9C%A0%EB%AA%85-%EA%B0%80%EB%AC%B8%EC%9D%84-%EA%B4%B4%EB%A1%AD%ED%9E%8C-%EC%A7%88%EB%B3%91%EB%93%A4/

 

국내외 과학기술동향, 정책, 문화 등 과기계 이슈 정보 제공.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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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ciencetimes.co.kr

https://m.mbn.co.kr/news/world/4918637

 

스릴러영화인 줄…대대로 근친 결혼한 美가족, 심각한 유전병에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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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bn.co.kr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88%9C%EC%A2%85-%EA%B0%9C%EB%A7%8C-%EC%84%A0%ED%98%B8-%EC%9C%A0%EC%A0%84%EB%B3%91-%EB%8A%98%EC%96%B4%EB%82%9C%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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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ciencetimes.co.kr

https://m.hani.co.kr/arti/animalpeople/companion_animal/878252.html?_fr=gg#cb 

 

순종 집착…‘만들어진’ 개들의 불행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www.hani.co.kr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489220#home

 

순수혈통 자랑은 그만, 유전병 많고 수명도 짧아요 | 중앙일보

투견을 위해 강한 턱을 가진 대형 품종을 만들었고, 귀엽게 보이기 위해 몸은 작게 머리는 크게 하기도 했다. 이는 유전적 다양성을 떨어뜨려 여러 가지 유전성 질환에 시달리게 한다. 이렇듯 대

www.joongang.co.kr

https://m.yna.co.kr/view/AKR20211231072300083

 

백두산 호랑이, 개체수 늘었지만 근친교배 위험 | 연합뉴스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멸종위기에 있는 아무르 호랑이(일명, 백두산 호랑이)의 개체 수가 늘었지만, 근친교배의 위험이 있다는 중국...

www.yna.co.kr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414 

 

북극곰, 빙하 손실로 근친교배 위험 커져

유전적 다양성 감소는 북극곰 멸종 위험을 증가시킨다

www.newspengu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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