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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서리뷰

[도서리뷰] 랩걸

by wonnni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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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책 제목- 랩걸

 

지은이 - 호프 자런 / 김희정 옮김

 

출판사 - 알마

 

목차 - 프롤로그 / 1부. 뿌리와 이파리 / 2부. 나무와 옹이 / 3부. 꽃과 열매 / 에필로그 / 감사의 말 / 덧붙이는 말

 


 

 

예전에 <랩걸> 책을 읽는 것을 두 번 정도 도전했었습니다. 처음은 한창 <랩걸>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을 때였고, 두 번째는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딸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탔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시도 모두 책의 앞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질투'와 '거부감'이 책 읽기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2009년에 나는 마흔이 되었다. 교수로 일한 지 14년이 되는 해였고, 우리가 사용하던 질량분석계와 함께 작동할 수 있는 기계를 성공적으로 제작해서 동위원소 화학 연구에 상당한 돌파구를 마련한 해이기도 했다.' -38p

 

 

 

교수인 아버지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실험실과 과학을 가까이 한 점, 실험과 사랑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은 모습, 거기에다 얼마나 머리가 똑똑하면 26살에 조지아공대의 교수가 될 수 있는건지! 예전에는 이런 부분들에 거부감을 느끼고 책을 덮었었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책을 읽으니 책 뒷부분의 매력적인 많은 이야기들을 놓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호프 자런 (출처-google image)

 

 

 

저자 호프 자런은 '어떻게 식물들이 그토록 오래, 그토록 성공적으로 번창해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을 하는 과학자입니다. 이는 순고생물학 범주에 들어가는 분야로, 이러한 종류의 과학은 불치병에 대한 새로운 약을 개발하거나,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이용될 물건을 개발하거나, 입이 떡 벌어질만한 새로운 발견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이런 연구는 '호기심에 이끌려서 하는 연구'죠.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에 이끌려서 하는 연구가 과연 어떤건지, 이러한 연구를 바라보는 과학자로서의 호프 자런의 태도는 어떤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가루가 오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는 이 우주에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작고 부족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 순간 나는 서서 그 사실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싸구려 장난감이라도 새것일 때는 빛나 보이듯, 내 첫 과학적 발견도 그렇게 반짝였다. (...) 이 수수게끼를 해결함으로써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증명했고, 마침내 진정한 연구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다. (...)  나는 정오가 되기도 전에 그 발견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곧 더 나이 들고 현명한 과학자가 내가 본 것은 사실 자기가 이미 추측했던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 관찰 결과가 엄청난 발견은 아니고, 당연한 추측을 확인한 것 뿐이라는 그의 설명을 나는 공손한 자세로 들을 것이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이 없었다. 우주가 나만을 위해 정해놓은 작은 비밀을 잠깐이나마 손에 쥐고 있었다는, 그 온몸을 압도하는 달콤함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작은 비밀을 손에 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큰 비밀도 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105p

 

 

 

 

위 내용은 호프 자런이 과학자로서의 첫 발견을 한 장면을 묘사한 글입니다. 박사학위 눈몬 실험 중 팽나무 씨를 둘러싸고 있는 흰 격자 창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내는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소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발견일지라도 그 순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우주에 단 한사람, 나뿐이라는 점이 과학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호프 자런은 자신의 연구가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기술을 만들어 떼돈을 벌거나, 우주를 연구하는 핵물리학자들처럼 관심과 영광을 얻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러한 연구들이 훗날 또 다른 과학자들에게 모종의 지식을 전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연구를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서의 징검다리로 비유하며 누군가가 내딛는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순수과학을 대하는 과학자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호프 자런과 빌 (출처-google image)

 

 

 

 

<랩걸> 책을 이야기 하면서 '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만났다기보다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라고 표현할 만큼 운명적인 첫 만남으로 시작한 빌과의 인연은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집니다. 표면적으로 호프 자런은 교수, 빌은 그 밑에서 실험을 돕는 연구원입니다. 호프 자런이 몽상에 가까운 계획을 세워 정부 기관에서 연구 자금을 따오면 빌은실험 모형을 만들어 몽상에 가까운 계획을 실현시킬 방안을 찾습니다.

 

 

 

 

하지만 호프 자런과 빌은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닙니다. 같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몇주 내내 하루 24시간을 붙어 지내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조울증 등 여러 가지 정신적인 문제로 호프 자런이 힘들 때 새벽에 몇시간이고 통화를 합니다. 연구에서도 둘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완벽한 파트너입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에서 호프 자런과 빌은 함께했기 때문에 나중에 호프 자런이 빌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르는 배신감이 들기 까지 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둘 사이를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제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듯이 책 뒷부분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라벨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호프 자런은 거기에 대해 답을 알지 못하며, 빌은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한 전제조건이며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형제라고 표현합니다. 

 

 

 

 

 

빌과 호프 자런이 함께 연구를 하는 모습은 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책에서 소개됩니다. 그 중 두 연구자가 새로운 연구 거리를 찾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둘은 새 연구 주제를 정할 때 새로운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찾아가 눈 닿는 곳까지 멀리 바라보며 아이디어가 찾아오길 기다린다고 합니다. 혹은 실험 장비를 몽땅 모아 쌓아놓고 한참을 노려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궁금하고 흥미로운 주제가 생기는 걸 보니 정말 환상의 파트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문비나무 (출처-google image)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적인 부분은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무를 사랑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나무를 응원하고 기특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의 뿌리끼리 의사소통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무가 분비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저 멀리 떨어진 다른 나무의 유전자에 영향을 준다던지, 다 자란 큰 나무가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길어 올려 주변의 약한 어린 나무들에게 나눠 준다는 연구 내용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나도 내가 행복하고 기대에 차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쇼핑하고, 아기 방을 꾸미고, 배 안의 아기에게 사랑을 담아 말을 건네면서, 사랑의 결실을 기뻐하고, 내 자궁이 그득 찼다는 사실을 느긋하게 즐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인생의 일부분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슬퍼했다.' -308p

 

 

 

 

그뿐만 아니라 여성과학자로서의 힘든 부분, 임신 초기에 조울증과 환청에 대한 약물을 복용하지 못해 너무나 힘든 시기를 보낸 기억(너무나 세세하게 심리가 묘사되어 있어서 숨을 참으면서 읽었습니다), 샤워는 2주에 한 번 하고 아침과 점심은 영양 음료 한두 캔으로 떼우는 등 연구에 미쳐있던 시절, 연구를 하면서 제일 걱정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돈'이며 과학자는 순진하게 연구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 학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많은 학회 참석과 서신 교환이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을 호프 자런은 솔직하고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나무의 유일한 에너지원은 태양이다. 광자가 잎의 색소를 자극하면 부지런한 전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고리를 만들고 늘어선 다음 한 전자에서 다음 전자로 태양에서 받은 흥분감을 전달한다. (...) 식물 색소인 엽록소는 크기가 큰 분자로, 숟가락 모양의 엽록소의 가운데 파인 부분에는 소중한 마그네슘 원자 하나가 앉아 있다.' - 174p

 

 

 

 

또 호프 자런이 문장을 꾸미는 방식을 보는 것도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전자가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을 흥분감을 전달한다고 표현한 것이 멋지지 않나요? '상록수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는 의미다'라고 표현한 것도 매력적인 문장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리뷰는 오랫동안 읽지 않고 책장에 묵혀두었던 책을 완독해서 개운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다음 번 리뷰도 읽다 포기한 과학책을 다시 도전해보려 합니다!

블로그 이웃님들도 이번 기회에 읽다가 접어 두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개인적인 책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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