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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서리뷰

[도서리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by yeonnni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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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지은이 :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옮긴이 : 조석현

그린이 : 이정호

출판사 : 알마

목차 : 들어가는 글//1부 상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길 잃은 뱃사람/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침대에서 떨어진 남자/매들린의 손/환각/수평으로/우향우!/대통령의 연설//2부 과잉 익살꾼 틱 레이/큐피드병/정체성의 문제/예, 신부님, 예, 간호사님/투렛 증후군에 사로잡힌 여자//3부 이행 회상/억누를 길 없는 향수/인도로 가는 길/내 안의 개/살인/힐데가르트의 환영//4부 단순함의 세계 시인 리베카/살아 있는 사전/쌍둥이 형제/자폐증을 가진 예술가//역자후기//참고문헌//장별 참고문헌

 

책 표지 (출처; yes24)

 

책소개 (출처; yes24)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의사, 별이 되다

인간을 보는 새롭고 따뜻한 눈을 제시한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
2016 월드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 수상작가 이정호의 그림과 만나다.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였던 올리버 색스. 1985년 영국 현지 출간 이래 30년 넘게 전 세계 독자들에게 폭넓게 사랑받았으며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경증 환자부터 현실과 완전히 격리될 정도로 중증의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까지… 올리버 색스가 엄밀히 관찰하고 따뜻하게 써낸 ‘우리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의 독특한 임상 기록은, 인간 뇌에 관한 현대의학의 이해를 바꾸었다는 평가와 더불어 의학적·문학적으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알마’에서는 올리버 색스의 타계 1주기를 맞아 글과 디자인을 세심히 다듬은 개정판을 마련하였다. 누구보다 앞선 시선을 가졌던 작가의 목소리가 오늘의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도서 판매 사이트의 과학분야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무려 30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1970년대부터 색스가 발표했던 유명한 글들을 추려 1985년 첫 출간되었고,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기념하기 위해 2016년 우리나라에서 개정판이 발행되었습니다.

 

Oliver Wolf Sacks (출처; google image)

 

이 책은 총 4부 24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올리버 색스가 만난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부 상실과 2부 과잉에서는 주로 우반구 뇌의 기능의 결핍과 과잉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졌습니다. 3부 이행은 회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4부 단순함의 세계는 지적장애를 가잔 환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신경학적 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치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습니다. 환자의 증상 및 치료 과정 등이 서술되어 있어 임상보고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더불어 인간의 영혼에 대한 올리버 색스의 고찰을 읽다 보면 에세이를 읽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무엇이?' 뿐만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된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p. 11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환자가 앓고 있는 질병보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즉 환자 개인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는 책입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질병에 걸리게 된 원인을 알 수 있게 되거나 질병이 환자의 삶에 끼친 영향, 그리고 병을 치료하는 과정까지 담아내어 조금이나마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매우 색다르고 희귀한 신경학적 질병과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첫 에피소드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P선생은 물체를 '보는' 시각은 정상이지만 이를 인식하는 뇌기능에 문제가 생긴 시각인식불능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길을 가다가 소화전을 아이들로 착각하고, 아내의 머리를 자신의 모자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의 음악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도저히 어떻게 손써볼 도리도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 보이기도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할 정도인 사람이 어떻게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p. 31

 

 

P선생의 진단을 읽고 나서 시각기능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저자의 말을 통해 P선생은 시각을 잃어버린 시각장애와는 또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와 삶을 구성하는 정신 과정은 단순히 추상적 혹은 기계적인 과정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 대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할 뿐만 아니라 판단하고 느낀다. (중략) 따라서 느낌과 판단이라는 개인적인 것을 인지과학에서 배제한다면, (중략) 즉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파악하는 능력은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p. 45

 

 

사람들은 단순하게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하고, 판단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인식불능인 P선생은 물체는 바라보지만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불가능하고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P선생의 시각인식불능증을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은 무척이나 개인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에피소드는 '길 잃은 뱃사람'입니다. 당시 49세이던 지미는 자신이 19세라고 생각했고, 19살 이후의 기억이 없습니다. 무척이나 쾌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바로 직전 일을 잊어버리고 다시 되묻거나, 거울 속에 비친 나이 든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합니다. 그는 알코올로 인한 유두체 신경세포 파괴로 인해 중증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지미는 단순한 기억상실이 아니라 19세 이후의 기억이 없을뿐더러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자신의 형제를 보아도 늙어버린 모습에 놀라긴 하지만 무감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미의 증상을 듣고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주인공 루시 윗모어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을 잊고 항상 사고 당일인 10월 13일 일요일의 삶을 살아갑니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로맨틱코미디 영화답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영화 표지 (출처; 다음영화)

 

 

기억상실이라는 증상은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지만 기억상실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는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다면,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리고 현재 자신이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다면, 과면 그 사람에게는 어떤 삶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어떤 세계, 어떤 자아가 남게 될 것인가? p. 52

 

 

저자의 말이 제 머릿속을 강타했습니다. 현재의 제 모습은 과거의 제가 모여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저는 어떤 사람이 되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지미처럼 거울을 볼 때 늙어버린 제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제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즐거웠던 기억, 슬펐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다면 제가 가지고 있던 많은 생각과 제 일부분이 사라진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기억을 잃은 이후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한다면 새롭게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조차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더욱 무서웠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면 큰 상실감을 느끼겠지만 앞으로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겠지만, 19살 속에 머물러 새로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떤 삶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책 속에 서술되어 있는 지미의 모습은 영화 속 주인공의 밝은 모습과 비슷하지만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일을 계속해서 말하며 마치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노트에 적었다.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p. 61

 

 

저자는 지미에게 영혼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는 성당에서 기도하는 지미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기억의 연결성이 없는 그가 종교의식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인식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연결성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자의 깨달음과 다르게 그에게는 처음부터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의 연결성이 없더라도 순간을 살고 있는 존재지만 19살 이전의 기억을 통해 그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에피소드는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입니다. 크리스티너는 자신의 몸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몸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감각은 시각, 전정계, 고유감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그녀는 급성 다발신경염으로 인해 고유감각을 상실했습니다. 

 

 

자기 몸을 통제하고 움직이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또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데다 아주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정작 우리는 그것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는다. (중략)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 결코 의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 몸은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이다. p. 86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뇌가 지시하는 대로, 우리의 생각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걷는 것, 손으로 컵을 집어 물을 마시는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다리와 팔의 존재는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에 걸어야겠다는 생각과 물을 마셔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근육이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우리 몸을 인식하는 고유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몸이 없어진 느낌을 받게 됩니다.

 

 

"뭔가 무서운 일이 생긴 거예요. 몸에 감각이 없어요. 정말 이상한 기분이에요. 몸이 없어진 것 같아요." p. 88

 

 

그녀는 자신의 몸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시각을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리를 보고 다리의 존재를 인식한 후에 다리 근육을 움직여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놓게 된다면 그녀는 자신의 다리가 존재한다는 감각과 인식을 놓치게 되고, 통제하고 있던 다리 근육이 풀리면서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것 또한 기혹한 시련이다.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그것이 겉으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신체가 마비되지도 않았다. 겉으로 나타나는 장애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p. 97

 

 

고유감각 상실이 더욱 힘든 이유는 세상의 시선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가진 그녀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날카롭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요즘에는 공황장애, 우울증, 조현병과 같은 정신의학 질병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신체가 아닌 마음이 힘든 사람들은 겉으로 티가나지 않아 배려를 받기 힘들뿐더러 마음의 병을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회의 인식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어떤 의미로 그녀는 '척수를 빼내버린' 상태였고 몸을 잃은 혼과 같았다. 고유감각과 함께 근본적인 것을 잃은 것이다. 정체성을 기질적으로 유지해 주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자아의 토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아란 무엇보다 육체적인 것이다.'p. 99

 

 

저자는 앞서 영혼을 잃어버린 지미와 다르게 그녀를 몸을 잃어버린 영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더불어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크리스티나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몸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만약 몸을 통제하는 것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몸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몸을 통제하지 못하지만 사고하는 것은 가능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부는 감각이나 기억, 능력 등이 과잉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과잉의 측면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은 시각이 신선했습니다. 물론 과잉이 가져다주는 예술적 감각이나 행복감에 의지하거나 중독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과잉은 이처럼 특별한 능력과 고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낳는다. 그래서 통찰력이 있는 환자는 뭔가 이상하고 모순된다고 느끼게 된다. p. 160

 

 

'위험하리만치 좋은 몸 상태'와 '병적인 특출함', 그것은 기만적인 행복감이다. 그 밑에는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것은 과잉이 놓은 무시무시한 함정이다. 그것은 자연이 놓은 함정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이 놓은 함정일 수도 있다. 전자는 도취로 인한 일종의 이상증세로 나타나고, 후자는 흥분에 대한 광적인 탐닉으로 나타난다. p. 161

 

 

2부의 첫 에피소드 '익살꾼 틱 레이'의 주인공 레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틱 증후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틱 증후군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틱 증후군을 치료하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는 "틱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엔 제게 뭐가 남나요? 전 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겁니다."하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p. 172

 

 

레이의 고민과 걱정을 이해한 저자는 2명의 레이가 공존하도록 했습니다. 주중에는 약을 복용함으로써 틱 증상을 억제 및 완화하여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되, 주말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고 익살꾼 틱 레이로 살아가면서 예술성을 발휘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 '큐피드병'은 젊었을 때 걸렸던 매독이 70년 만에 재발하여 신경매독으로 인해 감정과 감각이 고조되는 증상을 가진 노부인의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수줍고 조용한 성격으로 살아왔던 환자는 신경매독으로 인해 고조된 기분을 느끼거나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너리하게도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지냈던 흥분을 느끼게 해 주고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게 해 준 신경매독을 증상을 치료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병이라는 것은 알지만 병 댁분에 기분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런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좋아요.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p. 181

 

 

하지만 점점 흥분의 정도가 심해졌기 때문에 결국 치료를 진행했고, 그 결과 환자는 다시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저자도 동일하게 느꼈습니다.

 

 

중독이나 병에 의해 해방과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신과 상상력은 무뎌진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 얼마나 역설적이고 잔인하며 아이러니한 일인가! p. 186

 

 

 

다음 에피소드 '정체성의 문제'의 주인공 톰슨은 앞서 지미와 마찬가지로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톰슨은 자신의 끊어진 기억과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톰슨은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림으로써 기억의 연속성이 끊어졌고 이야기를 잃게 되면서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정체성 역시 끊어졌습니다. 끊어진 부분을 잇기 위해, '의미'를 위해 톰슨은 필사적으로 말을 지어냈습니다.

 

 

우리는 각자 오늘날까지의 역사, 다시 말해서 과거라는 것을 지니고 있으며 연속하는 '역사'와 '과거'가 각 개인의 인생을 이룬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인생 이야기, 내면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와 같은 이야기에는 연속성과 의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야말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기 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p. 193

 

주변 세계는 하나하나 그 모습을 잃어가고 의미를 잃어가며 사라져 간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필사적으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자신의 발 밑에서 항상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무의미라는 심연, 그 혼돈 위해 '의미'라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p. 195

 

톰슨은 아무도 없는 정원에 있을 때 끊어지고 잃어버린 부분을 채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말을 멈추고 평온함을 되찾았습니다.

 

 

정적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분위기가 주어지고, 나아가 주위가 인간을 제외한 온갖 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에야만 그는 비로소 평온과 충족감을 맛보는 것이다. 인간의 정세청이니 인간관계니 하는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직 자연만이 존재할 때 그는 자연과 말이 필요 없는 일체감을 누리는 것이다. p. 201

 

 

 

 

4부 단순함의 세계는 주로 자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저자는 지적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일지라도 그 외의 면에서는 완전하다고 말하며 그들이 가진 마음의 질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단순하지만 구체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구체성'이다. 그들의 세계는 생기 있고 정감이 넘치고 상세하면서도 단순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추상화를 통해 복합해진 것도, 희박해진 것도, 통일된 것도 없다. p. 291

 

구체적인 것은 손쉽게 아름다운 것, 극적인 것, 희극적인 것, 상징적인 것이 되며, 예술이나 정신과 같은 심오한 것으로 승화될 수 있다. 개념적으로 말할 때, 지적장애는 불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 상징적인 것을 이해하는 힘든 건강한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p. 204

 

 

특히나 와닿았던 부분은 저자가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p. 305

 

인간의 영혼은 그 사람의 지능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p. 338

 

 

아쉬운 점은 자폐는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지만 이 책 속에 언어가 뛰어나거나, 특출 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거나, 숫자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등 비범한 재능을 가진 인물들만이 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저자는 자페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은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고 단정 짓지 않고 사람 또는 문화적인 관계는 맺기 힘들지만,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 누구라도 섬처럼 고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라고 존 던은 말했다. 그러나 자폐증 환자들은 바로 그러한 존재이다. 본토에서 떨어져 나와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이다. (중략)

본토에서 떨어져 나와 '섬'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의미할까? 그것은 '하나의' 죽음일지도 모르지만, 완전한 죽음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타인들이나 사회 및 문화와의 '수평적인' 연관성은 잃더라도 생생하고 강력한 '수직적인' 관계는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나 영향이 없더라도, 현실이나 자연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는 있다. p. 378

 

 


 

뇌과학에 관한 책을 찾아보다가 뇌신경학에 관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신경학적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도와주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저자가 자주 언급한 정체성과 영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 과정인지, 영혼이란 무엇인지 등 심오한 질문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인 평점은 4점입니다.

 


<참고자료>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북적북적]

북적북적 292: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new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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