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클라라와 태양
지은이: 가즈오 이시구로
옮긴이: 홍한별
출판사: 민음사
목차: 1부/2부/3부/4부/5부/6부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 AF(Artificial Friend)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되어 팔리기 시작한다. 그중 유난히 인간을 열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감정과 소통을 익히는 데 관심이 많은 소녀 AF 클라라는 AF 매장 쇼윈도에서 자신을 데려갈 아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린다. 어느 날 거리를 관찰하고 있던 클라라에게 다가 온 조시라는 이름의 소녀. 조시는 클라라를 데려가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클라라는 그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 (yes24 책 소개 중 일부)
이 책은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라는 프로그램 소개 영상을 보고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클라라와 태양'라는 책을 독자의 관점으로 다양한 지식을 곁들여 설명해주었습니다. 책의 결말까지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시청한 이후 꽤 시간이 흐른 후 책을 읽었기 때문에 방해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은 후 도서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시청하니 책의 내용을 훨씬 더 풍부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이라면 책을 끝까지 읽은 후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클라라와 태양 편을 시청하시길 권합니다.
2017년 노벨상을 수상한 영국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4년만의 신작이 SF 소설이라는 점 또한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인공지능 로봇 AF와 인간 소녀의 우정을 다룬 '클라라와 태양'은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입니다.
AF(Artificial Friend)인 클라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서술되어 전개가 조금 느리고 지루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장면이지만 클라라는 작은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관찰하며 세상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굉장히 자세히 묘사가 되어있고, 또한 인간의 관점이 아닌 AF의 관점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초반에는 색다르고 흥미롭게 느껴졌지만 뒤로 갈수록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묘사 방식은 책을 읽다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클라라가 AF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뒤쪽 벽까지 방 전체 공간이 두 줄로 늘어선 스물 네 개의 상자로 나뉘어 보였다. 이렇게 나뉜 상태에서는 눈앞의 장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서서히 방 안 모습이 머리에 들어왔다. 110p.
어머니는 계속 나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고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얼굴이 상자 여섯 개를 채웠다. 가늘게 뜬 눈이 상자 세 개에 조금씩 다른 각도로 나타났다. 156p.
이처럼 클라라의 시야는 가끔 여러개의 상자로 나뉘어 세상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조시가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 모임을 하는 모습을 관찰하거나 조시 어머니의 표정을 관찰할 때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오면 잠시 클라라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6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매장 앞 쇼윈도에 전시되어 세상을 관찰하는 소녀형 AF 클라라와 인간 소녀 조시의 운명적인 만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매니저에게 선택된 클라라가 매장의 쇼윈도에 진열이 되고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인간 소녀 조시와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한눈에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합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도시의 극히 일부분과 움직이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하는 클라라의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오기도 했고, AF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을 볼 때는 인간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조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아이에게 '선택되지' 않기 위한 클라라의 모습을 보고 조시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는 클라라의 인간적인 면모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2부, 3부는 마침내 함께하게 된 클라라와 조시가 함께 생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AF를 대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태도를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클라라를 친구처럼 대하는 아픈 조시, 클라라에게 적대적인 가정부 멜라니아, 클라라에게 무관심한 듯한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 클라라에게 무관심한 조시의 친구 닉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AF를 그저 도구 또는 장난감으로 취급하는 모습도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클라라는 모든 이에게 항상 정중하고 예의 바른 일괄된 태도를 보입니다. 또한 로봇답게 수동적인 모습 또한 보여줍니다. 딱히 지시가 없을 때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조용히 서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클라라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어 로봇인 클라라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매정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가 된 그 세계에서는 굉장히 보편적인 모습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저자가 모든걸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상자로 나뉘어 보이는 클라라의 시각뿐만 아니라 '오블롱'이라는 것에 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지 않지만 책을 읽어 추측해보건대 핸드폰이나 태블릿과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 일 듯합니다. 또한 '대체'되었다거나 '향상'되었다는 표현도 종종 등장합니다. 이러한 표현들도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루어 보아 본래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기계가 '대체'하게 되었고, 또한 우월한 유전자를 갖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향상'된 능력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시는 향상을 위한 유전자 조작 시술을 받은 이후 건강이 굉장히 악화되었고, 아픈 조시를 세심하게 보살피기 위해 클라라를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클라라는 조시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조시와 닉의 갈등을 클라라가 중재하여 주었고, 슬픔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였고, 조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해'에게 간청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돌보는 아이가 외롭지 않도록 하는 것이 AF의 목적이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클라라는 조시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조시가 건강해지도록 해에게 빌기 위해 노력하는 클라라의 헌신적인 모습은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게 얼마나 주제넘고 무례한 행동인지 압니다. 당신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고 제 부탁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아주 넓은 마음이 있으니 한순간만 멈춰서 제 제안을 한번 들어 봐 달라고 부탁드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요. 당신을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 만한 일. 만약 제가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는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자비를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 (중략) "해가 공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요. 공해 때문에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나는지요. 저는 공해를 만들어 내는 기계를 본 적 있어요. 제가 그 기계를 찾아내서 망가뜨린다면요. 공해를 더 만들지 못하게 끝을 낸다면요. 그런다면 그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있나요?" 246-247p.
4부에서는 클라라를 데려온 어머니의 진짜 목적이 드러났습니다. 조시의 언니인 셀을 잃은 아픔에 이어 조시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머니는 조시가 세상을 떠난 후 조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복제한 AF를 만들기 위해 클라라를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처음 매장에 왔을 때 클라라에게 조시의 걸음걸이를 내라고 했던 어머니의 모습, 모건 폭포에서 클라라에게 조시의 모습을 흉내내라고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이해가 갔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클라라의 관찰력을 테스트하고, 아픈 조시와 함께 소풍 나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모습인 줄 알았던 장면들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시를 위한 클라라의 헌신적인 모습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습니다. 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해를 일으키는 쿠팅스 기계를 파괴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로봇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AF의 목적을 잘 드러내는 로봇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5부는 조시가 건강해지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발단, 전개, 위기가 지나고 절정에 이르는 내용이었습니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서술이었습니다.
해가 조시를, 침대 전체를, 격렬한 주황색 반원으로 비추어서 침대에 가장 가까이 있던 어머니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려야 했다. (중략) 해는 계속 빛을 가차 없이 조시에게 쏟아부었다. (중략) 하지만 조시의 몸놀림에서 새로 솟은 기운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411p.
6부는 앞선 부분과 다르게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건강을 되찾은 조시가 대학에 진학하고, 닉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며, 쓸모를 다하게 된 클라라는 야적장에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클라라에게는 실망감이나 절망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클라라는 카팔디 씨가 만든 조시 모습의 AF가 되어 어머니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대신 조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442p.
"아뇨 괜찮습니다, 매니저님. 여전히 친절하세요. 하지만 저는 이 자리가 좋아요. 그리고 되돌아보고 순서대로 배열할 기억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442p.
또한 클라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소중히 여기고 이 기억들을 곱씹으며 남은 시간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큰 줄기는 인공로봇 클라라와 인간 소녀 조시에 관한 이야기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갈등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자식에게 최고의 것을 주기 위해 향상을 선택했지만 그로 인해 아픈 조시를 보며 괴로워하는 어머니, 향상되지 않은 채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닉의 모습 등을 보면서 미래 사회에서 할 법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평점은 4점입니다.
'소소한 도서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리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0) | 2022.04.07 |
---|---|
[도서리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0) | 2022.03.23 |
[도서리뷰] 식물학자의 식탁 (0) | 2022.02.24 |
[도서리뷰] 사이보그가 되다 (0) | 2022.02.09 |
[도서리뷰] 유전자 임팩트: 크리스퍼 혁명과 유전자 편집의 시대 (0) | 2022.01.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