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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과학이야기

푸른 색 피를 가진 살아 있는 화석, 투구게가 위험하다!

by yeonnni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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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게(Tachypleus tridentatus)는 4억5000만년 동안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온 해양 절지 동물입니다. 생김새가 투구를 닮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투구게’라 불리고, 서양에서는 머리가슴 부분이 말발굽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horseshoe crab’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름과 달리 게보다는 거미, 진드기, 전갈에 더 가깝습니다. 투구게의 조상은 캄브리아기에 등장한 고생대의 대표 동물인 삼엽충이며, 지금도 발생학적으로 삼엽충과 비슷한 유생기를 거칩니다. 투구게는 약 2억 년 전부터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립니다. 네 차례 대멸종에서도 생존한 투구게가 코로나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중입니다. 사람을 살릴 백신을 만들려면 투구게의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해 오늘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tlantic horseshoe crabs burrowing in the sand on Pickering Beach, a national horseshoe crab sanctuary near Little Creek, Del. (출처; Mike Segar/Reuters)

 

 

  일반적으로 인간을 비롯하여 우리가 아는 익숙한 동물들은 붉은색 피를 가지고 있지만 투구게의 피는 푸른색을 띠고 있습니다. 사람의 피가 붉게 보이는 이유는 헤모글로빈(hemoglobin) 속에 있는 철(Fe)이 산소 분자와 반응하면 빨간색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구게는 헤모시아닌(hemocyanin)구리(Cu)가 산소 분자와 결합하면 푸른색을 띱니다. 헤모시아닌은 산소압이 낮고 추운 환경에 적합한 산소운반체 입니다.

 

3종류의 혈색소 구조 (출처; goolge image)

 

 

  투구게의 혈액은 원시적이어서 사람으로 치면 혈액과 림프액이 섞여 있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보통 혈액림프(hemolymph)라고 불리는데, 이 헤모림프 안에는 1종의 유주세포, amebocytes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horseshoe crab circulation system (출처; pinterest)
Amebocytes are mobile cells found in the blood of many invertebrates like horseshoe crabs. Image courtesy of Jack Levin (출처;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1956년 미국 우즈홀 해양생물학연구소의 프레더릭 뱅(Frederik Bang; 1916-1981)은 투구게를 활용해 혈액 순환을 연구하던 중, 투구게의 피가 그람음성세균을 만나면 바로 응고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963년 뱅 박사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혈액학 책임자인 록카드 콘리(Dr. C. Lockard Conley)와 이 자료를 토론하게 되었습니다. 콘리는 실험실 팀원인 잭 레빈(Jack Levine)에게 투구게의 혈액의 세포인 아메보사이트(amebocytes)가 사람의 혈소판(혈액응고를 시작하는 물질)과 비슷한지 알아보라는 연구를 제안하게 됩니다.

 

 

Frederik Bang( 1916-1981)

 

 

  잭 레빈은 이 현상을 탐구한 결과, 투구게의 혈구 세포에서 뭔가가 나와서 혈액을 응고시켰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물질은 그람양성세균에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혈구세포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혈구세포를 깨끗이 세척한 후에 용해하여 사용하는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투구게 혈액 속 변형세포(유주세포) Amebocytes에 의해 분비된 물질이 그람음성세균이 가지고 있는 지질다당류(liposaccharide, LPS)와 반응하여 피를 응고시킨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이는 투구게의 특별한 생존 전략입니다. 투구게 혈액에는 면역작용을 하는 백혈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 병원균과 싸울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몸 속으로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해로운 물질이 체내에 퍼지지 못하도록 혈액을 응고시키고 그 다음 제거하는 독특한 면역체계입니다.

 

 

Jack Levine 

 

 

  이후 레빈 교수는 투구게의 학명인 리물루스(limulus)와 혈구세포인 아메보사이트(amebocytes) 그리고 용해물(lysate)을 합쳐서 투구게 변형세포 용해물 (Limulus amebocyte lysate), LAL 시험법을 개발했습니다. LAL 시험법, 또는 내독소(內毒素, endotoxin) 시험법은 투구게의 혈액응고시스템을 이용하여 미생물의 지질다당류를 정량하는 방법입니다. 투구게의 혈액응고는 다음과 같은 연쇄적인 반응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투구게의 혈구 속에는 지질다당류에 의해 특이적으로 활성화되는 단백질분해효소(protease)인 Factor C가 존재합니다. 지질다당류에 의해 활성화된 Factor C는 Factor B를 활성화시키며, 이는 비활성형 응고 효소(proclotting enzyme)을 활성화시켜 활성형 응고효소(clotting enzyme)으로 전환시킵니다. 이 응고 효소는 혈구로부터 분비되어 혈액을 겔(gel)화 시킵니다. LAL 시험법은 정제된 투구게의 혈구를 용혈 시켜 얻은 수용성 용액을 세균 감염여부를 알고 싶은 용액을 떨어뜨려 매우 적은 농도의 지질다당류를 빠른 시간 안에 정량적으로 검출할 수 있습니다. 내독소는 발열 증세를 유발해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게 하기때문에 백신과 같은 의약품을 생산하려면 내독소 시험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Horseshoe Crab Aquaculture as a Sustainable Endotoxin Testing Source (출처; frontier)

 

 

  프레데릭 뱅과 잭 레빈 교수는 LAL test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Golden Goose Award를 수상하게 됩니다. ‘황금거위상(Golden Goose Award)’은 처음엔 쓸모 없고 허황되게 보이는 연구가 나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연구를 기리는 상입니다. 2012년 미국의 짐 쿠퍼 하원의원의 주도로 처음 제정됐습니다.

 

 

출처; The Golden Goose Award

 

 

  LAL test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내독소를 찾아내기 위해 사람과 비슷한 면역 체계를 가진 토끼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오염이 의심되는 물을 토끼에게 주사하고 며칠 동안 상태를 보며 열이 오르는지 관찰했습니다. 이 검사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많은 토끼와 사육 공간이 필요하고, 세균의 정량적인 정도를 알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투구게 혈액을 쓰면 이 검사가 훨씬 간단해집니다. 토끼를 쓸 때와 달리 길어도 2시간이면 결과를 알 수 있고, 또한 혈액 응고 정도에 따라서 내독소의 독성이 얼마나 심한지 정량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미국 FDA는 이런 투구게 혈액을 활용한 LAL 검사법을 1977년 승인했습니다.

 

 

 

 

 

투구게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어왔습니다.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투구게를 찐 뒤 갈아서 농사지을 때 비료로 사용했습니다. 이 농법은 원주민들에 의해 유럽대륙에도 알려졌고, 19세기에는 매년 100만 마리 이상의 투구게가 논밭에 비료로 뿌려졌습니다. 1960년대에 화학 비료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투구게를 갈아 비료로 사용했습니다. 또 1990년대에는 커다란 바다고둥이나 장어의 미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97년에는 1년 동안 약 200만 마리의 투구게를 잡아들였다고 알려졌습니다. 의약품 생산에 투구게 혈액이 이용되면서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2016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위기 근접종으로 분류됐습니다.

 

 

투구게를 비료로 사용하는 1920년대 델러웨어 (출처; Delaware Public Archives)

 

 

  2018년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제약회사들은 매년 투구게 43만 마리를 잡아 심장 부근 딱지에 구멍을 뚫어 30% 이상의 혈액을 뽑아낸다고 합니다. 인간에겐 도움이 되는 생명체이지만, 불행히도 투구게는 자신들의 피를 착취당합니다. 채혈 과정에서 10%가 죽고, 자연으로 돌려보낸 투구게도 5~20%가 오래 살지 못한다고 알려졌습니다. 특히 피를 뽑힌 암컷 투구게는 번식력이 약해져 개체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또한 투구게 감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로 인해 치료제와 백신 제작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그에 따라 LAL 검사법에 사용되는 투구게 혈액의 필요성도 더욱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Blood extraction from horseshoe crabs at a Lonza biotech facility in Maryland (출처; Reuters)
Horseshoe crabs are bled at the Charles River Laboratory in Charleston, South Carolina. PHOTOGRAPH BY TIMOTHY FADEK, CORBIS (출처; GETTY)
Horseshoe crab blood (출처; Chesapeake Limulabs)

 

 

  투구게의 감소는 암컷 투구게의 알을 먹고 생활하는 여러 해양 생물의 개체수도 같이 줄어 들게 하는 연쇄 작용을 일으켜 생태계 전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투구게가 많이 사는 미국 델라웨어 만은 남아메리카에서 북극으로 이동하는 동안 42만∼100만 마리의 도요새와 물떼새 등이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입니다. 공교롭게도 철새들이 쉬어가는 2, 3주가 바로 투구게들의 짝짓기 시기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먼 거리를 날아온 새들에겐 해안가에 널려 있는 투구게의 알이 엄청난 영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투구게가 감소하면서 그 알을 먹고 사는 붉은가슴도요새도 멸종우려종이 됐습니다.

 

 

A red knot, a type of migratory shorebird that feeds on horseshoe crab eggs, was weighed, measured and tagged by a team of researchers and volunteers at Reeds Beach in New Jersey last year. Credit. Michelle Gustafson (출처; The New York Times)

 

 

  2020년 6월 뉴욕타임스는 “올 초 동물보호단체와 일부 제약사들이 투구게와 투구게 알을 먹고 사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rFC(recombinant Factor C)를 약물 생산 과정에 도입하려고 했지만 지난달 29일 미국약전이 rFC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제동을 걸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0년 간 합성 대체물로 투구게의 혈액을 대체할 물질을 개발하고 있지만, 대체물의 효능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오늘날에도 투구게는 강제로 헌혈을 당하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강제로 헌혈 당하는 투구게의 희생을 줄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서 대체물이 하루라도 빨리 개발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TED-Ed)

 

(출처; Business Insider)

 

 

 

 

 

참고자료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animals/article/covid-vaccine-needs-horseshoe-crab-blood

https://www.chesapeakelimulabs.com/horseshoe-crab-blood

https://www.goldengooseaward.org/01awardees/horseshoe-crab-blood

https://www.nytimes.com/2020/06/03/science/coronavirus-vaccine-horseshoe-crab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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